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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기사>"나눔"을 파는 푸드마켓
담당자 | 서울푸드뱅크
작성일 | 2004.01.20
[메트로 라이프] "나눔"을 파는 푸드마켓
"기탁 천사들 늘었으면..."
“우리 처지에 라면 두개도 고맙지. 이래봬도 단골이야, 허
허.”가게에 들어선 임수동(80ㆍ성북구 미아동) 할아버지
가 “그새 다 가져갔네” 하더니 매장 안을 꼼꼼히 둘러본
다. 큼직한 비닐 봉투에 주섬주섬 챙긴 라면 두개, 빵 한
봉지, 삼분카레, 칫솔 등 물건값은 모두 1만1,500원.
임 할아버지가 쌈짓돈 대신 회원카드를 내밀자 직원이 “오
늘 마지막 손님이시니까 이건 덤이에요” 하며 사탕과 빵
을 할아버지의 봉투에 함빡 담아준다. “정말 그래도 돼?
할멈이 좋아하겠네. 한달 뒤에 봐.” 검버섯 핀 할아버지
의 이마엔 웃음주름이 잡혔다.
지난해 3월6일 서울 도봉구 지하철 4호선 창동역 1번 출구
에 둥지를 튼 서울푸드마켓은 저소득층을 위한 국내 최초
상설 음식 나눔 공간이다. 회원은 기초생활수급대상자로
한 달에 한번 최대 5가지 물품을 무료로 직접 골라 가져갈
수 있다.
푸드마켓(Food Market)은 기업 등으로부터 음식물을 기증
받아 양로원 독거노인 소년소녀가장 등에게 일괄 분배하던
푸드뱅크(Food Bank)에 슈퍼마켓 기능을 보완한 셈. 모두
무료지만 가난한 자의 자존심을 세울 양으로 마련된 저금통
엔 물건값으로 500원을 지불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. 푸드뱅
크가 공급자 중심이라면 푸드마켓은 수요자 입장에 서있
다.
거저 받는 거야 다를 바 없지만 장보듯 골라가는 이점 때문
인지 200가구로 시작한 푸드마켓 회원은 1년도 안돼 3,500
가구를 훌쩍 넘었다. 하루 평균 이용객은 120여명. 오전10
시 개시(開市) 전에 식료품을 고르기 위한 줄이 길게 늘어
설 정도로 가난한 이웃에겐 인기다.
15개 업체가 정기적으로 쌀 야채 김치 라면 등을 공급하고
있지만 18평 매장에 진열된 식료품은 늘 부족하다. 이용자
는 느는데 기탁물품은 한정된 탓에 쌀이라도 들어오는 날
엔 그야말로 전쟁터가 된다는 게 직원들의 설명이다. 매달
쌀 200㎏이 들어오지만 한 가구에 2㎏씩 돌아가는 터라 혜
택을 보는 건 100가구에 불과하기 때문.
그래도 보잘 것 없는 살림살이의 회원들을 돈 없다 괄시 안
하고 늘 따뜻이 맞아주는 터라 푸드마켓은 가난한 이웃의
단골가게이자 외로운 노인들의 사랑방이다. 한 할머니가
“저 세상 간 영감얘기도 재미있게 들어주니 얼마나 고마
워. 음식 못 받는 날도 발길이 끌려” 하며 방긋 웃자 박모
(74) 할머니도 “단골가게에 음식이 넉넉하면 더 좋지” 하
곤 한마디 걸쳤다.
회원들의 바람처럼 가져갈 수 있는 음식물이 넉넉하면 좋으
련만 꽁꽁 얼어붙은 경기 탓인지 흔하디 흔한 설 맞이 떡국
용 가래떡도 들어오지 않고 있다. 라면이라도 넉넉히 진열
해 둔 날이면 그나마 다행. 가져갈 물건이 없어 빈손으로
돌아가는 노인을 붙잡고 차비라도 챙겨주는 게 푸드마켓 인
심이다.
처음 시작할 때 매주 한번 5가지 물품을 가져가게 하다가
한 달에 한번으로 바뀐 것도 기탁 음식물 부족이란 안타까
운 사연을 달고 있다. 음식물을 공급하는 업체도 고맙지만
남 모르게 물품을 전하는 작은 정성이 절실한 까닭이다.
푸트마켓 직원 2명과 자원봉사자, 회원들은 이름 없이 음식
을 나누는 이웃을 천사라고 불렀다. 서울푸드마켓 곽은철
소장은 “매달 보름 빠짐없이 참치 캔 등 음식물을 싸 가지
고 슬쩍 와선 ‘자 이거 받아요’ 하곤 휙 사라지는 ‘15일
의 천사’ 아주머니가 있다”고 소개했다.
이용자는 계속 늘고 있지만 기탁자는 이에 미치지 못하고
있는 푸드마켓은 아직 절반의 성공이다. 성공의 열쇠는 작
은 정성이나마 나눌 준비가 된 천사들이 쥐고 있다. 추운
겨울을 보내고 있는 가난한 이웃에게 음식과 덤으로 사랑까
지 전달하는 방법은 간단하다. 직접 방문하지 않더라도 전
화 한 통화면 푸드마켓 직원이 음식물을 받으러 달려간다.
서울광역푸드뱅크 관계자는 “음식물을 나누는 작은 관심
이 어려운 이웃에겐 큰 보탬이 된다”며 “저소득층이 모
여 사는 강북지역 1호점에 이어 서쪽에도 곧 2호점을 낼 계
획”이라고 말했다.
서울푸드마켓 개장시간은 평일 오전10시~오후5시, 토요일
오전10시~오후1시, 일요일은 쉰다. 문의 (02)907-1377
한국일보, 고찬유 기자 jutdae@hk.co.kr
입력시간 : 2004/01/19 17:47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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