공지사항

<기사> ‘걸식 아동’ 취급받는 ‘결식 아동’…동심 큰 상처…반발

담당자 | 서울푸드뱅크 작성일 | 2004.01.14

26일 오후 1시 서울 종로구의 한 주택가.
시멘트를 덧바른 계단을 올라가 20m쯤 들어가니 벽에 금
이 간 10평 규모의 단칸방 집이 하나 나왔다.
문 앞에서 이모(11)군이 혼자 라면을 끓이고 있었다.
기자가 다가가자 이 군은 대뜸 “나 결식아동 그런 거 아
녜요. 말하기 싫어요”하며 방 안으로 들어가버렸다.
이 군이 집에서 혼자 지낸지는 세 달정도.
이 군의 어머니는 올해초 가출했고, 아버지는 지방으로
‘공사하러’ 내려가서 소식이 끊어졌으며, 할머니가 밤늦
게까지 나물장사를 해서 겨우 살림을 꾸려나가고 있었다.
이 군의 점심을 챙겨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, 이 군은
‘기초생활수급대상자’나 ‘무료 급식 대상자’가 아니었
다.
주민등록상에 부모가 모두 등재되어있고, 자가(自家)에 사
는 것으로 되어있다는 이유에서였다.
이 군은 할머니와 함께 관할 동사무소를 찾아갔지만 “조
건이 안 돼 식권을 받을 수 없다”는 답변만 들었다.
같은 시각, 서울 강북구 A중학교 박모(13)군은 같은 반 친
구 10여명에게 ‘식권맨’이라고 놀림을 당했다.
담임교사가 친구들 보는 앞에서 “급식비 안내고 무료 급
식받았던 사람 나와!”라며 이 군을 불러 방학 기간 중 점
심 식권을 받는 요령을 알려줬기 때문이다.
박군은 “지난 여름방학에 식권을 들고 지정된 식당에 갔
는데 주인 아저씨가 손님들 앞에서 대놓고 ‘얘는 밥 얻어
먹으러 온 아이’라고 말하는 바람에 수치심을 느껴 두
번 다시 식권을 쓰지 않았다”며 “배고픈 것도 싫지만 거
지 취급받는 건 더 싫다”고 말했다.
대부분의 초·중·고교가 오는 31일 겨울방학을 앞두고 있
는 가운데 정부가 결식학생 30만5000여명(교육인적자원부
추정치)을 대상으로 벌이는 ‘방학 중 중식 지원 사업’
이 정작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을 누락시키거나 현장을 고
려하지 않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.
점심 지원 대상자를 파악하는 해당 관공서의 가정환경조
사 등이 형식에 치우친데다가, 그나마 대상자로 선정된 학
생들에 대해서도 수치심을 자극하는 방법으로 지원되는 경
우가 많기 때문이다.
교육부와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방학 중 점심지원 대상자
는 새해부터 학교의 의뢰를 받은 해당 동사무소의 조사를
거쳐 선정되고, 선정된 학생들은 방학 동안 각 기초자치단
체나 해당 사회복지관 등을 통해 점심 식권을 발부받아 지
정된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거나 각 가정에서 도시락을 배
달받는다.
그러나 분명히 끼니를 때울 수 없는 상황인데도 선정과정
에서 누락되는 등 ‘지원 사각지대’에 놓이는 학생들도
많다.
게다가 기존의 방학 중 점심지원사업을 담당했던 주관부서
가 새해부터 교육인적자원부에서 보건복지부로 바뀌면서
그나마 대상자 수가 줄 가능성도 높다.
교육부 관계자는 “기존에는 학교장이나 학급담임의 재량
만으로 점심지원 대상자에 선정된 학생들이 많았지만 보건
복지부의 기준은 이와 달라 그런 학생들이 대상에서 누락
될 수 있다”며 “가급적이면 이런 유형의 지원 대상자들
을 빼지 말아달라고 공문을 보냈다”고 밝혔다.
봉제공장에 다니는 홀어머니, 할머니와 함께 5평짜리 단칸
방에 사는 노원구 C초등학교 4학년 이모(여·10)양도 중
식 지원 대상에서 누락됐다.
해당 동사무소는 “다른 업무 때문에 학교에서 결식 아동
실태조사를 의뢰하는 모든 학생의 가정을 일일이 방문할
수 없다”며 “재산세 납부 실적 및 자가용 소유 여부 등
의 서류만으로 아이의 형편을 판단하는 게 사실”이라고
해명했다.
성공회 푸드뱅크 김한성 신부는 “정부에서는 ‘두 끼 이
상 굶는 결식아동은 1만5000명, 점심 한 끼를 거르는 학생
은 30만5000명 정도 된다’고 추정하고 있지만, 아직까지
정확한 통계조차 나오지 않은 상태”라고 말했다.

[조선일보] 2003-12-27 (사회) 09면 42판 1807자
장준성기자 peace@chosun.com
이지혜기자 wigrace@chosun.com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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