공지사항

<기사> 고교생 봉사모임 "햇살"

담당자 | 서울푸드뱅크 작성일 | 2002.07.29

글 송현숙.사진 권혁재 기자

지하철 2호선 신림역 3번 출구를 나와 마을버스
를 타고 내려서도 한참을 들어가는 길. 언덕빼
기 텃밭에 호박.고추가 영글고 이름모를 꽃들도
반갑게 피어있는 서울같지 않은 그곳. 신림 6
동 ´해바라기 연립주택´ 옆에는 작은 놀이터가
하나 있다. 언제나 아이들이 복작대지만 매주 화
요일과 토요일은 할아버지.할머니들로 붐빈
다. ´푸드뱅크´ 신림먹거리나눔마당에서 음식을
나눠주는 날. 이웃이 희사한 음식을 또다른 이웃
들에게 나누는 날이다.
자원봉사자 아주머니들이 나눠담은 빵이며 카
레, 된장 봉지가 하나씩 줄어들고 음식을 손에
든 노인들이 흡족한 얼굴로 놀이터를 나설 즈음
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하나둘씩 몰려든다. 토요
일 오전 수업을 마치자마자 책가방을 메고 달려
온 아이들은 ´배달의 청소년´들이다. 저마다 음
식을 싸들고서, 몸이 불편해 놀이터에 나오지 못
한 할아버지.할머니들을 찾아나선다.
´햇살´이라는 이 모임. 미림여고.광신고.삼성고.
서울여상 등 서울 관악구 일대의 고등학생 열댓
명이 2주마다 한번씩 먹거리 나눔마당에 모여 홀
로 사는 노인들에게 먹거리를 배달해주고 말벗
도 해 드리며 배고픔과 ´정고픔´을 달래준다.
1995년 시민단체인 (사)관악사회복지회가 방학중
에 운영한 청소년 봉사활동 교실에 참여했던 학
생들이 자발적인 봉사모임을 결성해 햇살 1기가
탄생했고, 지금의 5기로 이어졌다.
중3때 선생님 소개로 김복례 할머니(88) 집에 들
르기 시작한 주희(미림여고 3)는 할머니와 정이
들대로 들었다. "친손녀 같은 게 아니라 친손녀
예요"라고 할 만큼. 할머니가 좋아하는 장아찌
나 깻잎같은 밑반찬이 많은 날은 주희의 발걸음
도 가볍다. 빽빽한 아파트촌 뒤편, 햇빛도 잘 들
지 않는 할머니의 단칸방에서 주희와 친구들은
제 할머니집에 온 듯 마냥 즐겁다. 할머니가 쑥
을 다듬는 동안 학교 얘기로 재잘재잘. 수다를
떨다가 귀여운 응석도 부리고. 할머니가 바쁘면
저희끼리 TV보면서 자다가 쉬다가…. 한 평 남
짓 비좁은 방, 장롱 위까지 가득찬 고단한 세간
살이가 아이들 덕에 환해진다.
3년이 지나도록 학교를 오가며 할머니집을 드나
들었건만 주희는 할머니 생일도, 자녀에 대해서
도 모른다. 예전 일을 여쭤보면 항상 눈물어린
얼굴로만 대답하시는 탓이다. 주희는 "그냥 이렇
게 할머니를 오래오래 찾아뵈며 할머니의 눈물
을 닦아드리고 싶어요"라고 말했다. 주희가 고3
이 되자 부모님은 "할머니 만나는 시간만큼 더
열심히 공부하면 되지"하고 먼저 격려를 해주셨
다고 한다.
이렇게 한 두시간을 보낸 후 고3인 아이들은 학
원으로 발길을 돌렸고 나머지 아이들은 동네 교
회에 모였다. 저마다 모여 오늘 한 일과 느낀 점
을 쓰는 시간이다. 귀를 뚫은 아이도, 여자친구
를 데려온 남학생도 있었다. 모범생만 모인 것
도 아니고 봉사정신으로 무장한 아이들은 더더
욱 아닌 평범한 아이들이었다. 친구 소개로, 선
생님 소개로 봉사점수를 받으려고 시작한 아이들
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점수 때문에 남아 있는 아
이는 하나도 없다. 한번 두번 봉사활동을 하는
동안 나누는 재미와 보람에 푹 빠져든다는 게 아
이들을 지도하는 남일 선생님(29)의 말이다.
한번은 비가 많이 온 어느날 비에 흠뻑 젖어 돌
아온 아이가 있었다. 할머니 집으로 가는 골목
이 우산을 펼 수 없을 만큼 좁았다고 했다. 그
아이는 "나 젖은 건 괜찮은데, 할머니가 어쩔
줄 몰라 하시는 모습에 더 미안했다"고 말했다.
지나다니면서 늘 봤지만 창고인 줄 알았지 사람
사는 곳인 줄 몰랐다는 아이, 몸이 불편한 할머
니를 대신해서 연탄불을 직접 갈면서 연탄을 처
음 봤다는 아이, 사시사철 옷 한벌로 사는 어려
운 이웃이 드라마가 아닌 실생활에도 있다는 것
을 알게 된 아이들…. 격주로 토요일 오후 너댓
시간쯤 활동하고 한달에 한번 봉사활동에 대해
서 토론하는, 어찌보면 별 ´대수롭지 않은´ 활동
이지만 아이들 생각은 이렇게 한뼘씩 커간다.
5기를 거치는 동안 사회로 진출하거나 대학에 진
학한 햇살의 선배들은 이제까지 70여명. 아직 정
기적인 봉사활동은 없지만 서로 만나고 후배들
과 MT도 가며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
하고 있다. 이들은 매년 두번의 바자에도 꼬박꼬
박 참석하고 있고 작년 신림동 수해때는 연락을
기다렸다는 듯이 너나할 것 없이 팔을 걷었
던 ´햇살 예비군´이다. 이렇게 몇 기를 거치며
햇살은 아이들을 통해서 인근 학교 선생님들에게
도 많이 알려졌다. "이왕 봉사하려면 이런 활동
을 하라"고 추천하는 선생님들도 많다.
"양복입은 돈 많은 아저씨들만 이웃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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